제가 살고 있는 곳 가까이에 두 곳의 유네스코 등재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이 두 곳은 모두 한 사람과 관련이 있는데, 드라마로도
많이 알려진 정조대왕이 그 주인공입니다. 한 곳은 '융릉과 건릉'이고 다른 한 곳은 '화성'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림 : 수원화성 화서문 (출처 : 위키피디아)>
다른 조선 시대 성곽과는 달리 화성은 벽돌로 축조를 하고 거중기, 녹로 등 새로운 기계를 이용하여 축성되었습니다. 방어 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할 수 있는 구조로 동양 성곽의 백미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수원문화재단).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의 숨은 공신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매주 주말이면 다양한 문화행사가 있는 화성 행궁을 아이들과 처음 둘러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격동의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화성이 온전히 보존되어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인류 유적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네스코 공식 홈페이지에서 그 사정을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수원 화성 축성과 함께 부속 시설물로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 등 많은 시설을 건립하였으나 전란으로 소멸되고 현재 화성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 있다. 수원 화성은 축조 이후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되어 없어졌으나 1975년~1979년까지 축성 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 의거해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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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성 후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는 축성 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 계산, 시공 기계, 재료 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화성이 성곽 축성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동시에 기록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출처 : 유네스코와 유산
<http://heritage.unesco.or.kr/whs/hwaseong-fortress/>
조선 시대에는 큰 행사를 치르고 나면, 의궤청이라는 임시기관을 세우고 그 곳에서 행사에 대한 소상한 전말을 보고서로 작성하도록
하였습니다. 『화성성역의궤』는 그 의궤중의 하나로, 정조가 화성의 성곽을 축조한 뒤에 그 공사에 관한 일체의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의궤들도 2007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습니다(유네스코와 유산).
특히,『화성성역의궤』는 다른 의궤 보다 분량이 많다고 합니다. 화성을 축조하기 전부터 제대로된 의궤를 작성하기 위해서 사전조사 자료 및 모든 송수신 공문 들도 모두 정리되어있고, 상세한 도면까지 정리되어 있다고 합니다.
『화성성역의궤』를 보면 그 내용이 매우 상세하고 치밀하다. 그 안에는 화성을 축조하는 과정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어 화성이 어떻게 축조되었는지의 과정을 모두 알 수 있다. 또한 화성이 소실된다고 할 지라도 복원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출처 : 이영학
<18세기『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나타난 조선의 사회상>
1975년에 정부에서 화성을 복원을 시작하여 3년만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고, 현대 기술로 복원한 건축물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게된 원천은 의궤라는 치밀한 기록 유산이 있었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림 : 현대의 수원 화성 (출처 :
화성안내도)>
우리시대의 생명자원의 기록과 전승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생명과학도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이 있습니다. 기후 변화와 인류의 무분별한 개발이 매일 270종의 생물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추세로 온난화가 지속되면 100년 뒤에는 한반도는 난림대로 바뀌게 되고, 소나무나
금강초롱 등은 더 이상 자연상태에서 볼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대 의학의 난제들과 왜 인류가 질병에 걸리는 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진화의학(위키피디아)이라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공통적으로 지금 이 시대의 생명자원에 대한 충실한 정보를 후세대에 전승해야, 우리세대는 풀 수 없는 문제라 할지라도 후세대에게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배경에서 생명과학계에서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맞춤의료, 분자육종, 첨단진단기기 등 각 연구 주제와
더불어 동시에 현 시대의 생물정보의 수집, 보전, 공유를 통한 자산화 기반을 마련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이런 연구 주제는 좋은
논문을 내기 어려워 기피하는 분야이다). 수 백년전의 시간을 거슬러 복원할 수 있었던 의궤의 기록 만큼 충실한 생물정보 원천자료의
기록이라는 비전이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주)인실리코젠에서 이런 일들을 시작할 수 있었고, 나름 지속적인 사업이 되고 있습니다. 아래는 저희 회사에서 개발하여 납품하고 유지관리를 지원하고 있는 주요한 생물정보자원 시스템입니다.
<그림 : 다부처유전체사업과 생물정보자원>
각 시스템 마다 다양한 현안과 정부 전산시스템 개발의 형식에 얽혀 생각대로 만든다는 것이 아주 어렵지만, "의궤"만큼 충실한 정보를 만들어 보겠다는 다짐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국립농업과학원의 농생명바이오정보시스템(http://nabic.rda.go.kr/)은 농업과 축산 분야의 산학연 연구자들로부터 NGS와 유전체 데이터를 등록 받고 분양하는 절차를 갖추었습니다. 거기에 80코어 2테라
메모리의 고속컴퓨팅 환경과 연계된 분석 기능을 제공하여, 여러 유관 기관에서 견학하고 참조하고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을
구상하고 개발하는 과정을 함께했던 연구사가 대한민국공무원상(농촌진흥청 블로그)을 받았을 때는 개발진 모두가 자신들의 일처럼 뿌듯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의과학지식센터의 임상/오믹스데이터아카이브(http://coda.nih.go.kr/)는 NGS나 오믹스
데이터를 임상 정보와 충실하게 엮어서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임상 연구와 오믹스 기술 기반의
질병 연구에서 사용된 시료, 실험, 해석 정보를 연계하는 것과 일반 연구자들의 편의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매우 어려워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시범운영중).
여러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우리가 만든 시스템이 후세대에 활용될 정보를 보존한다는 그 무게감입니다. 100년
뒤에도 활용할 수 있는 생물정보로 보존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생명과학의 실험 현장에서는 항상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 데이터를 형식화/규격화 시키는 시스템 개발도 매번 새로운 것과 예전 것을 통합해야하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생명자원을 정보화하면서 느꼈던 현장 경험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원천자료 : 인위적으로 첨삭된 정보가 아닌, 분석기기에서 생성된 원천자료가 중요하다 (예, 염기서열: ab1, fastq 등).
- 실물자원과의 연결정보 : 생명자원을 기탁해 두었거나 은행에 보존되어 있는 경우, 그 정보를 꼭 연계해야 한다.
- 메타정보의 충실도 : 원천자료를 생성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메타정보가 충실해야 한다. 실험 모델, 플랫폼, 참조정보 등을 명확히 정리해야 후세에도 재활용 할 수 있다.
- 온톨로지 : 표준화가 되면 좋겠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에 맞추다 보면 표준화는 쉬운 주제가 아니다. 따라서, 적어도 메타정보를 설명하고 데이터간의 상호 관계를 규정하는 용어집은 필수이다.
실제 정보를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 기능을 고려하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정보라는 무형의 자산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데 필요한 최소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에필로그
이 글을 쓰기위해 의궤를 조사하면서 당시 의궤를 작성하던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는
이미 화성의 완공보고서 같은 것인데, 수 백년이 지난 후에도 완벽히 재현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작성했던 것입니다.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과학과 기술 관련 새로운 소식이 인터넷을 타고 전해옵니다. 트렌드에 뒤쳐져서는 안된다는 강박증이라도 있는 듯 새 것을
따르기에 분주한 과학기술인들도 많습니다. 이런 시대에 백 년 뒤를 고민하는 것은 寓公이 山을 옮기려 하는 듯 어리석어 보일지
모릅니다. 거대한 조직도 아닌 강소기업의 연구소에서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이 이루기 어려운 꿈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10여 년간 불모지였던 "생물정보 시장"을 창출해왔고, 人Co라는 100년의 비전을 갖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우리에겐
이루기 힘든 꿈이 아닌 조금씩 이루어갈 수 있는 현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우리 (주)인실리코젠이
"백년기업"이 될 수 있다는 또 다른 꿈을 가져 봅니다.
작성자 : 데이터사이언스센터장 강병철
Posted by 人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