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권위에 도전한 유전자 가위, 축복인가 재앙인가?
가타카(Gattaca)와 크리스퍼(CRISPR)

2016~2017년의 키워드는 4차 산업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에 의해 자동화와 연결성이 극대화되는 산업 환경의 변화를 일컫는다. 주요 유망 분야인 로봇, 인공지능, 나노, 바이오 등 관련 기술의 변화가 우리 삶의 모든 면을 가히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으므로 혁명이라 불린다. 특히 바이오 분야는 인류의 건강과 복지를 책임질 주요 분야 중 하나이다. 인공지능, 로봇, 자율 주행차, 드론,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등이 인류의 생산성을 위한 것이라면 바이오는 우리 인간의 건강과 복지에 직결된 핵심 분야이다. 특히 바이오 분야는 가장 유망한 분야 1위로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제치고 선두를 달린다고 한다.
그 바이오, 생명과학 분야에서 요즘 핫한 키워드가 하나 있다. 바로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이다. 가히 혁명이라고도 하고 황금알을 낳는 기술이라고도 한다. 이 기술을 활용하여 질병 분야에 상용화할 수 있다면 돈방석에 앉게 된다고 한다(물론 윤리적인 문제는 번외로 하더라도).




[출처:wikipedia]

유전자 가위, 즉 우리의 유전 물질인 유전자를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내서 재단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우리가 생체 내에 있는 유전자를 조작하기 위한 시도는 1970년대 후반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바로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의 발견 때문이다. DNA의 특정 부위를 인식해 그 부위를 자르는 제한효소로 인해 DNA를 자르고 붙이고 이어 붙이는 유전자 조작기술이 탄생한다. 그러나 제한효소는 특정 DNA 서열만을 인식하고, 인식 부위가 6-8bp로 매우 작은 부위만을 인식해 자르기 때문에 유전서열을 구분하는 경우의 수가 적어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져 왔다. 이러한 제한효소의 한계 때문에 전체 유전체 길이가 수천 bp인 작은 생물 내에서만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었다.



[출처:en.wikipedia.org]

제한 효소로 유전자 조작을 통해 특정 질병을 대상으로 유전자 조작을 하고자 한다면 정확하게 필요한 부위를 잘라내야 하는데 정밀하게 원하는 부위에 작용 해서 절단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왜냐면 우리 염기 서열은 A, T, G, C의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6bp를 인식하다면 4,096의 경우의 수를 인식하게 되고 8bp라면 65,536개를 판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 사람은 약 30억 염기 서열로 되어 있는데 제한효소가 인식하는 부위가 단 한 곳에서만 있다고 볼 수 없다. 반복 부위가 있기 때문에 이 부위에서 모두 절단되어 버리고 새로운 염기서열로 대체하게 되면 우리 몸의 구성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제한 효소의 단점 때문에 새로운 유전자 조작을 하기 위하여 징크핑거(Zinc-Finger)와 탈렌(TALEN)등을 통해 새로운 유전자 가위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체재도 인식부위가 10bp로 짧아서 활용성과 효과 면에서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크리스퍼(CRISPR)라고 하는 세균에서 새로운 유전서열을 발견하게 된다. 최근 들어 이 부위가 각광을 받게 되었지만, 이 부위는 이미 1987년에 일본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크리스퍼는 '주기적 간격으로 분포하는 짧은 회문(Palindrome)구조의 반복 서열'(CRISPR,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이다. 시퀀싱 기술의 발달 덕분에 많은 유전체가 해독되고 이를 이용하여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내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길이고 짧고 해독하기 쉬운 세균의 유전체도 밝혀지게 되는데 세균의 서열 중에 특이한 회문 구조를 가진 부위를 발견하게 된다. 이는 두 회문 서열 사이에 세균의 서열이 아닌 전혀 다른 21bp의 서열을 가진 특이한 서열을 가진다고 한다.


[출처:Business Insider]

이 21개의 서열을 조사해보니 박테리오파지에서 발견되었다. 바이러스인 파지가 증식을 위해 세균으로 침투해서 증식한 후 숙주를 파괴하고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세균의 관점에서 반가울 리 없는 파지를 방어해야 하는 면역기작이 필요하게 되고 그 바이러스를 기억하기 위해 바이러스의 서열을 몸 일부에 저장했기 때문이다. 세균이 바이러스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자기방어시스템, 즉 면역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세균은 단세포 이상을 가진 생물로 에너지원만 있다면 스스로 성장하고 번식도 할 수 있지만, 바이러스는 스스로 번식을 할 수 없으므로 숙주 즉 세균에 기생하면서 번식을 한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감염시킬 때 자신의 DNA를 세포 내에 주입하고 숙주의 DNA 서열에 바이러스 자신의 DNA를 끼워 넣는다.



[출처:rna.berkeley.edu]

그러면 숙주는 스스로 번식과 생명활동을 위해 자신의 DNA를 번역해내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뿐 아니라 바이러스를 생산해낸다. 이때 만약 숙주가 바이러스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숙주는 바이러스로 가득 차게 되고 숙주는 결국 세포가 터져 죽게 되면서 바이러스를 주변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숙주인 세균은 바이러스를 방어할 자신만의 면역체계를 갖추게 된다. 자신의 DNA에 포함된 바이러스의 서열을 인식해서 추적하고 파괴하는 독특한 면역체계를 구성하게 된다. 세균은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크리스퍼 시스템을 이용하여 바이러스의 일부 서열을 잘라내어 자신의 DNA 일부분을 잘라내어 보관하게 되는데 이 보관된 영역이 바로 크리스퍼이다.

바이러스의 일부 서열을 뽑아서 회문 구조 사이에 21bp로 저장했다가 이를 나중에 바이러스의 서열과 비교하여 일치하는 부위가 있다면 이를 인식하여 잘라버려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것이다. 물론 제한된 시간 내에 세균이 이를 처리해야 한다. 만약 살아남은 세균이 있다면 이는 후대에 유전되어 다음 세대에서는 면역력을 갖추게 된다. 세균이 바이러스의 서열을 찾아내면 캐스나인(Cas9)이라는 단백질이 바이러스를 분해시킨다. 유전 물질인 DNA는 RNA로 전사되고 이 RNA가 다시 단백질로 번역되는데 Cas9이 바이러스의 DNA가 RNA로 전사되면 그 RNA를 인식하여 잘라버리는 가위 역할을 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인식부위가 제한효소나 Zinc-Finger와 달리 길이가 21bp이기 때문이다. 21bp 부위를 인식한다는 이야기는 4,398,046,511,104의 경우를 구분해 낼 수 있어서 정확한 부위를 탐지하여 손상 혹은 변이된 서열을 찾아내서 잘라내고 치환시킬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크리스퍼의 발견 덕분에 유전자 조작이 손쉽게 가능해졌다. 즉 수정란에 Cas9과 RNA를 주입함으로써 간편하게 새로운 형질을 가질 수 있도록 유전자 조작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크리스퍼-캐스나인 기술이

  • 암과 에이즈 등 난치병 치료
  • 고기능의 GMO 작물 개발
  • 멸종 동물의 복원

등에 적용 가능해지면서 이 유전자 가위 기술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더불어 인간은 인간을 포함한 거의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슈퍼 가위를 가지게 되었고 이는 가히 신의 영역에 접근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바이오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윤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이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를 조작하였을 때 DNA 복구 과정이나 혹은 표적에서 벗어나 유전자가 잘리는 등의 부작용에 대한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유전자 가위 기술이 난치병이나 생물 다양성 복구 등 많은 문제를 해결해 인류의 건강과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설레게 한다.

그러나 유전자 가위기술이 상용화되고 안정화되었을 때를 상상해 본다면...



그 상황을 가정한, 비록 흥행에서 실패해 우리에게 유명하지 않은 영화가 하나 있다. 영화 제목은 가타카. 1997년 개봉된 영화로 에단 호크, 주드 로, 우마 서먼 등이 출연하였다. 영화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면 가까운 미래에 유전공학의 발달 때문에 사람의 피 한 방물, 소변 등 신체 조직에 내재된 유전정보를 통해 그 사람의 질병 발병률과 성격, 성적 취향에서부터 예상 수명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을 판별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지게 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우주항공회사, 가타카(Gattaca)의 가장 우수한 인재인 제롬 머로우는 외모, 능력, 지식, 우성유전자를 가진 10점 만점에 9.3점의 점수를 가진 우수한 인재다. 자신의 꿈이자 토성의 위성 타이탄을 탐사하러 가게 될 임무 대기 중이던 어느 날, 탐사 감독관이 살해되게 되면서 살해범을 찾는 수사가 진행된다. 이때 주인공은 자신의 가짜 신분이 노출될까봐 노심초사하게 된다.

사실 그는 제롬 머로우가 아니라 빈센트 프리맨으로, 위조된 신체조직을 통해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적격자' 신분을 획득하게 된 가짜 제롬이다. 즉 그는 엄격한 선발제도를 가진 가타카에 입사할 수 없는 '부적격자' 신분인 빈센트이기 때문이다.

  • 주) 적격자, 부적격자: 유전자 판별 시스템으로 인간의 질병, 성격, 건강상태, 예상 수명을 판별하여 적격자와 부적격자로 구분함.

그 이유는 부모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 빈센트는 유전검사를 통해 약한 심장과 근시가 있게 되며 30살 즈음에 죽게 된다는 예측시스템 아래 그는 '부적격자'로 분류되어 사회에서 하급 인생을 살아야 하는 운명을 가졌다.

당시의 사회는 유전공학과 우생학을 기반으로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난 아이와 자연으로 생긴 아이를 구분하여 사회적 지위를 구분하는 사회였다. 부모의 자연 임신 때문에 상대적으로 열성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질병, 성격, 수명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세하다고 판단하며, 유전자 조작으로 부모의 유전자 중 해가 되는 돌연변이를 제거 후 우성 유전자만을 가진 아이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등급을 받을 수 있는 유전자 기반의 계급사회다. 시스템에 의해 부적격자로 분류된 빈센트는 그 후 정말로 근시 때문에 안경을 쓰게 되고,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동생 안톤보다 키도 작고 체력적으로 열세이며 부모에게서도 차별받는다. 그러다 우주 탐사라는 꿈을 안고 성장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늘 동생에게 지기만 했던 수영경기에서 노력과 정신력으로 동생을 이기고 자신의 꿈을 찾아 집을 떠나버린다. 예정된 그의 운명과 신분 때문에 어떤 시험이나 면접에서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우주항공회사에서 청소부 생활로 전전하던 중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빈센트는 위험한 도박을 벌이게 된다. 바로 유전적으로 열성한 사람 즉 부적격자에게 가짜 증명서를 파는 신분 세탁 중개인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게 되고 중개인의 소개로 유진 머로우와 만나게 된다. 즉 유전자를 팔려는 유진과 제공받은 유전자를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빈센트에게는 최상의 선택인거다. 유진이 가진 유전적 우성 인자는 빈센트를 좌절하게 했던 시험과 면접을 통과 시켜 줄 것이고 유진에게는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니.

결국 꿈을 이루기 위하여 유진의 가짜 샘플을 자신의 샘플로 조작하여 피 한 방울, 머리카락, 타액 등으로 인간의 우월성을 판별하는 시스템과 사회를 속이면서 가타카에 입사하게 된다. 비록 겉으로는 큰 키에 잘생긴 외모를 가졌지만, 유전적으로는 여전히 심장 질환과 근시의 유전자를 가진 상태로. 이후 탐사 임무 대기 중 감독관이 살해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드라마화한 영화다.

영화의 제목 가타카(Gattaca)는 DNA 염기서열인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사이토신(C)으로 되어 있는데 DNA에서 작명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의 시스템과 사회는 유전적으로 우성인자를 가진 즉, 오직 유전자로만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가 된다. 유전자 조작이 자유롭게 가능하므로 부모와 의사는 태어나기도 전에 우수한 우성 유전자만 남겨 두고, 열등한 열성인자는 제거하여 질병 노출 등 결점이 될 수 있는 유전자는 미리 제거하고 우수한 신체 조건을 가진 '인공아이'를 낳게 된다. 자연스럽게 우성 vs 열성이라는 두 유전적 차이로 '적격자'와 '부적격자'로 구분되는 사회가 되어 버린다. 물론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난 아이만 적격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 조작 없이도 준수한 외모와 머리가 좋은 사람은 적격자가 된다. 다만 유전자 조작을 하는 이유는 부적격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미리 제거하고 태어나는 것이 '적격자'가 될 확률이 훨씬 높을 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주) 유전정보 제공자의 이름인 유진 머로우 중 유진(Eugene)은 우성 유전자를 뜻하기도 한다. 즉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서 아마도 유진 머로우 라고 이름 지었을 것이다. 생물학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BLAST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도 유진 마이어(Eugene Myers)인데 이분도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일까?

사람의 피 한 방울로 그 적합성을 점수로 판단하여 연애 상대 혹은 채용 대상자로 분류할 수 있게 되었고 돈만 내면 병원에서 부모에게서 받은 정자와 난자에서 유전자를 수정하고 편집하여 결함을 제거해준다. 물론 더 많은 돈을 낸다면 제삼자로부터 제공된 우수한 유전자를 삽입시킬 수도 있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그냥 영화로만 간과하고 지나칠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질병 해방, 유전자 조작기술의 윤리적 문제, 차별과 계급사회, 인간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 등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기술의 발달은 질병으로부터의 독립과 해방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도 하지만 그로 파생될 사회의 변화도 예의주시하고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명대사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THERE IS NO GENE FOR THE HUMAN SPIRIT"

 


작성자 : BS실 이규열 부실장

Posted by 人Co

2017/02/03 10:42 2017/02/0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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